제주도 맛집 리스트 면요리편

내가 제주도 맛집 리스트를 적는 이유

제주도를 그리워하고 자꾸 찾아가고 싶은 이유는 원시적인 자연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있겠지만, 역시 맛있는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밥을 먹을 때, 대부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참고해서 소위 '맛집'을 찾게 된다. 물론 맛은 있다.(물론 심각하게 맛이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여행의 즐거움은 떨어진다. 나는 혼자서 제주를 여행할 때에는 어지간하면 검색을 하지 않고 제주를 경험한 사람들한테 식당을 묻는다. 에어비앤비 주인한테, 제주에 살고 있는 지인한테, 그도 아니라면 제주를 다녀온 지인들에게. 블로그는 정말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수단이다. 이런 내가 나의 블로그에 제주도 맛집 리스트를 적는 다는 것은 퍽이나 설득력이 없는 행동이다. 사실 이것은 나를 위한 기록이다. 다음 제주 여행에 에어비앤비에서 느지막히 늦잠 자고 일어나 '점심 뭐 먹지?' 생각할 때 막상 떠오르는 것이 없을 때, 이 포스팅을 살펴보며 입맛을 챙기기 위한 기록. 그럼에도 정성스럽게 써보려고 한다. 마치 호감이 있는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음악을 추천 할 때의 정성으로.

 

 

 

제주도의 면요리

나는 면덕후다. 어떤 여행지에서라도 기어코 그 동네에 유명한 면요리를 찾아서 먹는다. 나의 첫 회사는 라면회사였다. 하루에 열봉이 넘는 시식용 라면을 끓이는 일도 천직인가 싶을 정도로 면을 좋아한다. 족발을 시키면 옆에 따라오는 쟁반국수가 더 반갑고,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라면은 빼먹지 않는다. 면덕후인 나에게 제주도의 음식을 소개하라면 당연히 면요리가 먼저 생각난다. 제주도의 면요리는 조금 특별하다. 섬에서 나는 재료로 만들어 특별하고, 중면을 사용해 특별하고, 특별한 여행지에서 먹어 특별하다. 

 

원래 제주도는 쌀농사가 힘든 지형이라 보리를 주식으로 했다고 한다. 일부 지역에서 칼국수와 수제비의 중간 형태의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국수'라고 부르긴 힘들다. (*'조베기' 라는 음식으로 돼지국물에 메밀이나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뜯어 넣은 음식) 정확히 언제부터 제주도 지역에서 국수를 소비하게 되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일제강점기 때 건면 제조 공장이 들어서고 미군정 때 밀가루 원조를 받아 그 때부터 보편화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1970대 초부터 메밀반죽 대신 국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작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현재 제주도는 우리 나라에서 국수 소비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맛집 리스트를 면 요리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기국수 : 제주의 대표 음식

제주에는 돼지를 이용한 음식이 많다.(제주도에서는 '고기'라고 하면 대부분 돼지고기를 말한다.) 어렸을 적 봤던 교양 프로그램에서 제주는 어느 집이나 돼지를 키워왔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있다. 화장실에도 있어서 '똥돼지'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는 어린 나이에 다소 충격적이기도 했다. 제주의 일상에는 돼지가 친숙하다. 마을 경조사에는 어김없이 돼지를 잡아,삶은 고기는 돔베(*도마)에 올려 내고, 사골을 사용한 국물로는 국수를 말거나 몸국을 만든다. 부산에 '돼지국밥'이 있다면 제주는 동일선상에 고기국수가 있다.

 

제주도에는 고기국수집들이 많다. 공항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은 제주 시내에는 국수거리도 있어서 제주도에 도착을 해서 바로 찾기에도, 제주도를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로도 자주 찾게 된다. 나도 유명하다는 고기국수집들을 몇군데 가봤다. 맛은 비슷한 듯 많이 다르다. 김가루를 넣어주는 집도 있고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주는 곳도 있다. 가봤던 고기국수집중에는 여러 면에서 최근에 방문했던 '자매국수'가 입맛에 맞았다. 개인적으로 김가루를 너무 많이 넣은 고기국수는 육수 맛을 느끼기 어려운데 자매국수의 김가루 양이 심심한 고긱국수 국물에 적당한 감칠맛을 더한다.

 

제주도 고기국수 맛집_자매국수

대부분의 고기국수 가게들이 그러하듯 반찬은 단촐하다. 저녁 늦은 비행기로 제주도에 도착한 터라 세명의 일행이 배가 많이 고팠고 돔베고기를 하나 더 시킬까 하다가 비빔 고기국수를 추가로 나눠먹었다. 10분이나 지났을까, 다들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다양한 가게에서 고기국수를 먹어봤지만 이 가게가 특별히 맛이 더하거나 덜한 것은 아니다. 나는 취향을 결정할 때 '원형(原形)'을 중요시한다. 음악을 들을 리시버를 고를 때도 플랫한 모니터링용 이어폰이나 스피커를 선호한다. 무슨소리인가 싶겠지만 음식을 선택할 때도 이 기준이 적용된다. 작년에 평양냉면에 푹 빠져 거의 스무번은 찾아 먹었던 것 같다. 대부분 슴슴한 맛이 비슷할 수 있지만 가게마다 특색이 많이 다르다. 나는 여의도에 있는 '정인면옥'을 최고로 쳤는데 그 이유가 '가장 평양냉면 같아서'다. 고기국수에서 정인면옥을 찾으라면 자매국수를 꼽겠다. 고기국수를 처음 먹는 누군가를 데려간다고 하면 이 자매국수가 생각날 것 같다.  

 

+추가) 주차가 불편했다. 본점 앞에 몇대의 차가 있길래 뒤에 따라 세웠는데, 식사가 나오기 전에 가게에 물었더니 차를 대면 안된다고 한다. 나는 어쩌다 한가할 때 가서 웨이팅 없이 식사를 했지만 평소같으면 유명한 맛집이라 웨이팅이 있다고 한다.

 

 

 

회국수/성게국수 : 투박한 모양과 맛

6번의 제주 여행에서 나는 항상 함덕에 숙소를 잡았다. 제주도 동북쪽 중산간 지역 숲들과 아름다운 해변들이 가깝다. 처음 함덕에 숙소를 잡고 에어비엔비 주인분한테 주변에 맛있는 식당을 물어 알게 된 곳이 순풍 해장국과 동복리 해녀촌이다. 회국수와 성게국수라는 메뉴를 듣는 순간 이미 이 음식점은 내가 꼭 찾아야 할 곳이었다. 

제주도 면요리 맛집 리스트_동복리 해녀촌
동복리 해녀촌_회국수

두번의 실패 끝에 입장한(영업시간이 7시까지라 주변 관광을 하다가 항상 시간을 놓친다) 동복리 해녀촌의 첫 인상은 '투박함'이었다. 바다 한가운데에 던져진듯한 가게 외관도 그렇고, 식당의 분위기도 음식의 모양도 투박하다. 그저 있는 재료를 숭덩숭덩 썰어넣은 듯한 느낌이 강하다. 음식을 맛봐도 원재료의 맛이 잘 느껴진다. 회국수는 양념이 강하지만 횟감을 잔뜩 넣어 오래오래 씹는 맛이 있다. 씹을 수록 바로 옆의 바다에서 잡아 올린 달짝지근한 물고기 맛이 살아난다. 성게국수는 거의 반칙이다. 어떤 육수를 쓴다 한들 성게국수의 국물맛을 이길 수 있을까. 술을 즐기진 않지만 해장용으로 이만한 국물이 없겠다 싶었다.

 

+추가) 건물이 두개가 있어 헷갈리기도 하는데 같은 가게다. 둘 다 열려있다면 아무데나 들어가면 된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7시가 되면 칼같이 문을 닫는다. 주차 공간은 넉넉하다. 

 

 

 

밀면 : 부산과는 또 다른 맛

나의 두번째 회사였던 광고대행사에서 나는 지금 내 나이 또래의 팀장님들을 많이 만났다. 카피라이터 출신의 손팀장님은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으셨지만 오히려 대화가 잘 통했다. 내가 손팀장님 팀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팀장님은 돌연 퇴사 이야기를 꺼내셨고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기셨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때가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제주도에 대해서 처음으로 호기심을 느꼈던 때인 것 같다. 39세의 광고인이 치열한 경쟁에 지쳐 선택한 안식처 같은 곳. 몇 년이 지나고 몇번인가 제주를 방문하고 나는 손팀장님이 운영하는 디자인 회사를 찾았다.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팀장님은 나를 반겨주셨고 다음 날 시간을 내서 송악산 둘레길과 산방식당을 소개해주셨다.

제주도 면요리 맛집 리스트_산방식당
산방식당_돔베고기

사실 나는 이전에도 산방식당을 가봤다. 명색이 면덕후인데 이전 여행에서 제주도에서 판매하는 밀면을 먹지 않을리 없다. 팀장님과의 일화를 이야기 한 것은 사실 산방식당이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였다. 최근에 찾았을 때도 관광객이 반, 주변 주민 분들이 반 정도로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식당이 산방식당이다. 밀면은 부산의 향토음식인데 산방식당은 밀면을 제주식으로 풀어냈다. 소면이 아닌 중면을 사용하고, 고기 육수가 아닌 멸치 육수를 사용한다. 함께 나오는 돔베고기는 제주 돼지의 뒷다리를 직접 삶아 내는데 나는 산방식당을 돔베고기의 으뜸으로 본다. 야들야들한 식감과 따뜻하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기는 살얼음이 깔린 밀면과 최고의 궁합이다. 서귀포를 여행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이 식당이 생각나서 굳이 들를 정도로 가끔 생각나는 음식점이다.

 

+추가) 제주도민에게 인기도 많고 주변에 산방산, 송악산 올레길, 운진항 등이 가까워 손님이 많다. 밀면이 한창 인기가 많을 여름에는 기본 한시간 웨이팅이 우습다. 개점 시간(11시)을 맞춰서 조금 이른 점심을 먹는 것을 추천한다. 주차장이 있지만 자리가 많지 않아 대부분 식당 앞 도로에 빈 자리를 찾아 주차한다. (주차 자리가 없어 동네에서 10분을 빙글빙글 돈 적도 있다.) 제주 시내에 분점을 냈고 최근에는 서울에도 분점이 많아졌다.

 

 

 

파스타 : 어디서나 먹을 수 있지만 제주에서 먹으면 더 특별한 맛

제주까지 와서 무슨 파스타를 찾아 먹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럼 난 김영하 작가가 어느 여행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을 해주고 싶다. 사람들은 흔히 서울에는 보편적인 모든게 다 있고 지방은 굉장히 특수하게 한정 한다. 통영은 굴, 춘천 닭갈비,횡성은 한우, 안동 비빔밥, 담양 떡갈비 같은 것들이다. 물론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을 맛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방에서 보편성을 느껴보는 것도 즐거운 여행을 만드는 한가지 방법이다. 그 지역에서만 나는 특별한 재료가, 혹은 그 지방 풍경과 함께 맛보는 평범한 요리가 특별한 순간이 될 수 있다. (방송에서 정확히 김영하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다.)

제주도 면요리 맛집 리스트_101동 파스타_해도 잘 들고 인터리어도 멋진 내부
101동 파스타_크림감자 리가토니
101동 파스타_양송이 크림 베이컨 스파게티

함덕에 위치한 101동 파스타가 딱 김영하 작가가 말한 음식점이 아닐까. 예쁜 인테리어의 모던한 식당에 제주에서 나는 재료로 파스타나 화덕 피자를 내놓는다. 구좌읍에서 나는 감자를 이용한 리가토니, 제주 제철나무 샐러드, 제주 성게알 파스타 등등. 평범한 메뉴는 제주를 만나 특별해진다. 전투적으로 관광지와 맛집을 찾는 여행이 아니라면 한번쯤 이런 식당을 방문하는 것을 꼭 추천하고 싶다. 여행이 일상이 되는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물론 음식 맛도 좋다.

 

+추가) 두 대정도를 댈 수 잇는 주차 공간이 가게 바로 앞에 있다. 자리가 찼다면 근처 순풍해장국 옆의 주차장을 이용하면 가깝다. 주인분 선곡 센스가 정말 최고다. 내 취향에 딱! 항상 101동 파스타에 방문하면 플레이리스트에 노래를 훔쳐온다. 성게알 파스타는 여름 한정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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