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의 시작 : 일상의 위기와 여행의 기회
- 여행/해외 여행
- 2020. 3. 12. 08:45
꿈에서 본 듯한 풍경, 세리목호와 몽골.
십여 년 전에 어떤 블로그에서 봤던 충격적인 사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블로그 주인은 '세리목호'라고 불리는 그곳을 '천상의 호수'라고 표현했다. 사진을 보면 어떤 말인지 단번에 알 것 같다. 사진을 처음 취미로 시작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책상 위에 먼지만 쌓이는 캐논의 카메라 '5D'의 사진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던 때였다. 아직 비행기를 탄 적도 없고, 차는 커녕 버스와 기차를 이용한 여행도 몇 번 해보지 못한 20대 초반의 이야기. 여행은 가끔 어떤 기억의 편린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후배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후배가 어렸을 적 달력에 나온 풍경이 너무 멋져서 따로 스크랩을 해두고 '나중에 저기 꼭 가봐야지' 생각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사진은 잊어버린 채로 후배는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어느 날 물건을 정리하다가 다시 사진을 발견했는데 그 장소가 체코의 체스키 크롬로프였다고 한다. 후배가 여행한 많은 나라 중에는 체코도 있었고 체스키크롬로프도 여행하며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우연찮게도 어릴 적 간절함은 잊어버린 채로 바람을 이루게 된 셈이다. 너무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라는 이야기에 나 역시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럽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달력이 해외여행이 귀하던 시절에 많이 팔렸을 뿐이겠지만 말이다.
https://blog.naver.com/naingeun/30124632703
여전히 '세리목호'를 검색하면 그때의 그 블로그를 찾을 수 있다. 신장 위구르 우루무치 지역에서도 8시간을 차를 타야 볼 수 있다는 호수다. 2010년~2012년에 올라 온 몇 개의 포스팅을 제외하면 거의 자료가 없다. 10년 전에 나는 사진들을 보며 내 영혼이 저곳으로부터 오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초등학교 시절 어떤 선생님이 백 씨 성이 중국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해줬던 것 같다. 사실 확인은 안 해봤지만 우랄 알타이어족의 이동 경로를 보면 내 생각이 그렇게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36살이 된 지금 다시 본 세리목호의 사진들은 중앙아시아의 흔한(?) 풍경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지금부터 반년 전 다녀왔던 또 다른 중앙아시아의 꿈같았던 여행을 소개해볼까 한다.
몽골 여행의 시작은 의외의 위기에서 출발했다.
2019년의 회사 생활은 엉망이었다. 5년째 다닌 회사였고 팀장을 맡은지는 4년이었다. 팀은 와해되고, 내 가치관을 흔드는 인생의 성장통이 계속된 한 해였다. 퇴사 의사를 밝혔지만 회사는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고,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어 결국 나는 회사에 한 달간 쉬겠노라 말했다. 문제는 집에 있어도 쉬질 못하는 성격이었다. 원격 근무 시스템이 워낙 잘 되어있어 해외여행 중에도 무리 없이 업무 소화가 가능한 게 우리 회사다. 하물며 집에서는 어땠을까. 핫식스를 마셔가며 밤새 일하는 나를 보며 이건 아니다 싶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때 정신도 건강도 굉장히 황량한 상태였다. 휴식의 시간보다는 정신적인 제세동이 필요했다.
여자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쩌다 몽골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친구의 지인이 몽골 여행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더라는 이야기였다. 나도 사진을 취미로 하기 때문에 몽골 여행이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2년 전에는 여행사와 패키지 가격을 알아보는 구체적인 실행단계까지 갔었다.(알아보는 과정에서 비용도 부담되고 일정도 부담되어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우연히 듣게 된 몽골 여행 이야기는 나를 다시 키보드 앞에 앉혀놨다. 당장이라도 울란바토르행 티켓을 끊을 것만 같았다.
몽골 여행의 준비과정.
컴퓨터 앞에 앉아 닥치는대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국 여행사들 홈페이지를 보고 정보를 얻었다. 패키지여행은 질색이지만 몽골 여행은 가이드와 차량, 기사님 없이는 힘들다. 하지만 국내 여행사들은 정해진 여행 기간에 내가 맞춰야 하고 여행 코스도 이미 짜여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격도 비싸다. 추가로 정보를 찾아보다가 '러브몽골'이라는 카페를 발견했다. 몽골 여행을 준비하거나 다녀온 사람들이 다양한 정보를 업로드하는 커뮤니티다. 동행을 구하는 글부터 각종 여행지 후기가 넘쳐난다. 우선 한 달 휴식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일정부터 정하는 게 시급했다. 일정을 정하려면 우선 여행지를 정해야 한다. 고비 사막, 홉스골 호수, 울란바토르 인근 초원. 몽골에도 호수가 있나? 사진을 찾아봤는데 소름이 돋았다. 세리목호랑 똑같은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홉스골로 가는 일행을 구하기 시작했다. 보통 동행을 구하는 게시판에서 일정과 여행지를 확인하고(아직 정해지지 않은 팀도 있음)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몇 팀과 이야기를 나누다 연령도 비슷하고 일정도 마음에 드는 팀을 구했다. 동행을 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몽골 여행은 젊음의 여행인가 보다. 30대 중반만 되어도 비슷한 나이의 동행을 구하기 쉽지 않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갑이 있는 팀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던 것 같다.
가이드와 차량(기사님)이 필요하기에 러브몽골 카페에서 알아보고 현지 여행사를 예약했다. (나는 팀이 결정되고 거의 막판에 뛰어들어 이미 대부분 정리가 되어있었다.) 여행사에서 일정표를 받았다. 당시에는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저 차를 타고 몇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지만 봤다.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고 그저 하루빨리 나를 홉스골에 데려다 주기만 바랐다.
여행 일정 2주일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되어 서둘러 비자 발급을 받았다. 단수 비자로 1회만 사용 가능하며 90일의 체류 기간이 주어진다. 비자 발급은 당일에도 가능하긴 한데 6, 7, 8월은 몽골 여행의 성수기라서 비자발급이 쉽지 않아 자칫 잘못하면 일정을 놓치게 된다. 나는 일정도 얼마 남지 않아서 비자 발급 대행 신청을 하고, 대행 사무실에 직접 찾아가서 수령해왔다.
설렘과 불안함, 출발.
공항에 가는 길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몽골항공이 결항이나 연기가 많다고 해서 걱정되는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 한 시 출발 비행기였는데 체크인 대기 줄이 길었다. 생각보다 몽골 여행을 많이 가는구나 했다. 같은 비행기 편으로 가는 일행들이 있는데 탑승구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수속을 마쳤다. 수속하면서 생각해보니 혼자 해외에 나가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행기 티켓을 급하게 예매하기도 했고, 스카이스캐너에서 예약하는 건 처음이라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 티켓 가격이 보통 60~70만원정도 하는데 나는 일정이 촉박해서 티켓이 비싼가 했더니 비즈니스석을 예약했다. (30만 원 정도 더 냄.) mytrip이라는 해외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예매를 하고도 후기가 좋지 않아 불안했다. 그래도 제 때 예매되었고 티켓이 나온 게 어딘가 싶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타보는 비즈니스석에 괜히 신나기도 했다. 우당탕탕 준비했지만 어쨌든 여행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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